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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제목 : 자비량 선교 : 사도 바울의 본보기 4,246 - 조회
- 작성자이름 : 홍성율  ( HOMEPAGE ) 2016/08/25 - 등록

  사도 바울의 삶이 자비량 선교였음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처럼 일하면서 선교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하고 비능률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을 하면 성경을 읽고 연구할 시간도 빼앗기게 되고 효과적으로 양들을 먹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께서도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살 것을 정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일하면서 ‘버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으로 사는 것은 고난이 동반되고 위험천만한 일임을 직감하기 때문에 ‘주의 말씀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미친 생각’으로 일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 기록은 사도 바울의 자비량 선교를 진리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자비량 선교 방식을 예외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라”고 합니다.(고전4:16, 11:1)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의 생각일지라도 사람의 생각은 계속해서 악한 생각입니다.(창6:5, 20:11, 38:15, 48:11, 50:20. 잠12:5) 성경 기록인 하나님의 생각만 항상 옳습니다.(사55:8-9)

  사도 바울은 먹고 마시고 아내를 데리고 다니고 일하지 아니할 권리(power)가 있다고 합니다. 자기 비용을 들여 전쟁에 나가지 않으며, 포도원을 만들고 포도 열매를 먹으며, 양을 기르고 양떼의 젖을 먹을 권한(power)도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권한(power)이 있기 때문에 영적인 것을 뿌리고 육적인 것을 거두는 것은 큰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고전9:1-11)

  다른 사람들이 이런 권리(power)에 참여하는데 바울과 바울의 동역자들은 더 참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바울은 일하지 아니할 당연한 권리(power)를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권리(power)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권리(power)를 사용하는 것이 복음을 가로막을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고전9:12)

   사도 바울은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살 것을 정하셨느니라”고 다시 강조합니다. (고전9:13-14)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복음을 가로막지 않기 위해서 이런 권리(power)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다시 강조합니다.(고전9:15)

  사도 바울이 이런 권리(power)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밤낮으로 수고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자신의 필요를 마련하고 다른 지체들까지 도우면서 선교를 한 이유는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거나 부담을 주거나 짐이 되지 않으려고 조심한 때문이었습니다.(살전2:9, 고후11:9, 12:13,16. 살후3:7-10)

  누구의 빵이든 거저먹지 아니하였으며 너희 중의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수고와 해산의 고통 속에서 밤낮으로 일하였나니 이것은 우리에게 권한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너희의 본으로 만들어 우리를 따르게 하려 함이었노라.(살후3:8-9)

  하나님의 사역자가 자비량으로 선교하며 먹고 사느냐? 헌금이나 후원계좌로 선교하며 먹고 사느냐? 문제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전혀 아닙니다.

  영적인 것을 뿌리고 육적인 것을 거두는 것은 당연한 사역자의 권한(power)이며, 복음을 선포하는 자는 복음으로 살 것을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권리(power)를 사용하면 그 일로 인한 보상(reward)이 없을 뿐입니다.(고전9:18)

  또 먹고 입고 사는 문제는 믿음이 전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전3:13, 5:19)
  하나님께서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자신이 수고해서 얻은 것을 누려야 하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마귀와 그의 추종자들에게도 먹고 입고 사는 것을 주셨습니다.(마6:26)
  하나님도 모르고 성경을 무시해도 먹고 입고 잘 삽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사람, 매일 게임만하는 사람들도 먹고 입고 삽니다.
  사기꾼과 살인자도 먹고 살고, 도둑과 강도도 먹고 입고 잘 삽니다.
  악한 사람도 먹고 입고 살고, 착한 사람도 먹고 입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성경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잘 먹고 잘 입고 잘 삽니다.
  이 세상에서 먹고 입고 살아가는 것은 성경을 믿어야 하는 문제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전3:13, 5:19)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자들이 먹고 입고 사는 것을 염려할 까닭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마6:25-34)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신실한 사역자들이라면 사도 바울처럼 어떤 사람에게도 부담이 되거나 짐이 되지 않으려는 마음의 생각과 의도(the thoughts and intents of the heart)가 필수입니다.(히4:12-13)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아무에게도 부담이나 짐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처럼 주는 삶의 본보기가 되려는 마인드(mind)가 필요할 뿐입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이 없어서 “성경적인 원칙”을 버리고 예외인 자비량 선교를 했을까요?
  사도 바울이 "받는 것"이 합당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벗어나 “버는 것”을 택했을까요?
  사도 바울이 “복음으로 사는 것은 고난이 동반되고 위험천만한 일임을 직감했기 때문에 ‘주의 말씀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미친 생각’으로 일을 버리지 못 했을까요?
  사도 바울이 [주의 말씀대로 "복음으로 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들]의 본보기가 되었을까요?

  성경은 무섭도록 매우 위험한 책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이 마음속에 생각한 의도 그대로 입증하고 확증해서 자신을 속이도록 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겔14:3-5)

  처음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형제자매들에게 부담을 주고 짐이 되느니 차라리 굶어 죽으리라 작정했습니다. KJV를 통해 얻게 된 뛰어난 성경 지식들이 나 자신에게 위선과 교만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깨닫기 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출퇴근 운전도 해 주고 가구 배달도 하고 이런 저런 일들을 했습니다.
  마침내 흙으로 돌려보내셔서 땀을 흘려 농사를 짓게 하셨습니다. 흙과 똥을 만지면서 무능하고 무익하고 헛된 거짓말쟁이인 나를 확인하게 하셨고 위선과 교만을 버리고 헛되고 무익하고 무능한 나 자신을 확증하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책상에 앉아 책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일하면서 묵상할 때 가르쳐 주셨습니다. 땀 흘리고 흙을 만지면서 실제적인 것들을 알려주셨고 실제로 나누어 주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훈련하는 것은 책상 앞에서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땀 흘려 일하는 일터에서 주님과 속삭이며 묵상하는 귀중한 시간을 주셨고, 주님께 간청하는 중보 기도의 큰 기쁨도 맛보게 하셨습니다.
  일터에서 묵상을 통해 배운 진리들은 훨씬 더 실제적으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귀중한 것들이었습니다.
  작고 쉬운 평범한 진리지만 믿고 사용할 때 큰 열매를 맺는 것도 알게 하셨습니다.

  처음 KJV를 만났을 때 여러 번 실수했던 것, 진리를 말할 때 사랑 안에서 말해야 한다는 지식도 머리가 아닌 마음속에 다시 새겨 주셨습니다.(엡4:15)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전달해 주는 그릇 역시 깨끗해야 합니다.(딤후2:20-21)
  조롱하려는 의도를 품고 진리를 말하는 것은 순수하고 깨끗한 진리를 더럽고 지저분한 그릇에 담아 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선하고 순수한 진리를 아름답고 깨끗한 그릇에 담아 전해 주면 주고 받는 사람 모두에게 기쁘고 즐겁고 유익한 덕(virtue)이 되기 때문입니다.

  땀 흘려 일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입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본보기로 가르치는 것임도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로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항상 본보기를 통해 확증하며 가르치셨다는 사실도 알게 하셨습니다.

  지식(knowledge)은 정보를 갖는 것이고, 지혜(wisdom)는 지식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식을 갖고 있다면 자신부터 그 지식을 자신의 삶에 적용해서 삶으로 본보기를 보여야만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자라면 예수님처럼 더욱 더 본보기를 보여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고 감독하고 먹이는 것이 바로 양떼에게 본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벧전5:1-3) 양떼를 감독하고 다스리는 방법은 섬기고 종이 되고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막10:35-45)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양떼에게 본을 보이려면 사도 바울처럼 양떼에게 어떤 짐이나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에게도 어떤 부담이나 짐이 되지 않으려고 땀 흘려 일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된 여정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매우 기쁘고 자유롭고 평안하고 유익하고 복된 길입니다.

  “힘들게 땀 흘리며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데 왜 이 고생인가?” “성경만 읽고 연구해도 먹고 살 수 있는데...” “모든 것을 다 놓아 버리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에게 어떤 부담주지 않고 짐이 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수고하며 일한 사도 바울의 심정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어떤 부담도 주지 않으려고 일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들고 고된 것인지 경험하지 못하면 [복음으로 사는 것은 고난이 동반되고 위험천만한 일임을 직감하기 때문에 일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자비량 선교는 육체적으로 일하지 않고 복음으로만 살아가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됩니다.
  “받는 것,” - “복음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육체적으로는 훨씬 더 쉽고 편한 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된 길인 스스로 “버는 것" - 자비량의 길을 택했고,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라”고 간청합니다.

  킹제임스성경을 사랑하고 믿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바랍니다.

  아무에게도 부담이나 짐이 되지 않으려고 자비량의 본을 보인 사도 바울의 본보기를 [예외적인 경우이지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부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본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주의 말씀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미친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매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후원금이나 성도들의 헌금을 “받는 것‘으로 살지 않는 사람들을 [주의 말씀대로 "복음으로 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들]이라고 조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모르는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다면 그 지식은 무식하고 약한 자를 위해 자신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소유임을 잊지 말고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가진 뛰어난 지식으로 약한 자를 위로하고 세워주기를 바라고 또 뛰어난 지식이 사용될 때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약한 지체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약한 자의 양심을 먼저 돌아보기를 바랍니다.(고전10:23-29)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게 될 것임을 잊지 맙시다.(롬14:10, 고후5:10)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모든 것이 적절하지는 아니하며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모든 것이 세워 주지는 아니하나니
아무도 자기 것을 구하지 말고 각각 다른 사람이 잘되기를 구하라.
..........
내가 말하는 양심은 네 양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이니라. 어찌하여 내 자유가 다른 사람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고전10:23-2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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