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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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제목 : Bible Basic Word(성경 기초 단어) (IV) 414 - 조회
- 작성자이름 : 홍성율  ( HOMEPAGE ) 2017/08/03 - 등록

Bible Basic Word(성경 기초 단어)를 장별로 올립니다.

     8. 사람들의 생각(thought)
     9. 다스리는 것 (rule over)
    10. 잘하는 것(well being)
    11. 행복 (happy)
    12. 영적 성장(spiritual grow up)
    13. 참된 경배(true worship)와 모이는 것.
    14. 승리(victory)하라!
        마치면서


8. 사람들의 생각(thought)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계획이 기록된 책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기록을 단순하게 믿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고후1:12, 히11:6, 계4:1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생각을 믿지 않는 것을 절대로 급하셨습니다.(롬3:3-4)

  그런데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들의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무효로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God forbid).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바,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3:3-4)  

  어떤 자들이 성경 기록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진리인 성경 기록이 거짓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 기록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셨습니다(God forbid).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기록을 믿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따르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내 생각에는 착하게 살면 하늘 낙원에 갈 것이다.” “내 생각에는 하나님도 없고 지옥도 없다.” “내 생각에는 죽으면 끝이고 소멸되고 없어질 것이다.” “내 생각에는 영원이란 상상에 불과한 것이다.” “내 생각에는 하나님의 생각은 잘못이고 내 생각이 더 낫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사람들의 “생각(thought)”이 처음으로 언급되는 곳은 창세기 6장 5절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커지고 또 그의 마음에서 생각(thought)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continually)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창세기 6장 5절에서 처음 등장하는 “사람의 생각(thought)은 항상(continually) 악하다”고 성경은 정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항상 옳고 사람들의 생각은 계속해서 악하다는 사실은 변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에서 “생각(thought)”이라는 단어가 모두 다섯 번 언급되는데 이곳들만 확인해 보면 ‘사람들의 생각은 항상(continually) 악한 것’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생각에 대한 언급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생각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 까닭은 분명히 이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므로 내 아내로 인해 그들이 나를 죽일 줄로 내가 생각(thought)하였기 때문이라.(창20:11)

  창세기 20장 11절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로 인해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 줄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의 생각이 옳았다면 “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 네가 복이 되리라(창12:2)” “내가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창12:7)”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생각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악한 생각입니다.
   세 번째 언급은 창세기 38장 15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지파에서 오셨고 바로 그 유다지파의 뿌리인 유다의 생각(thought)입니다. 유다에게 엘, 오난, 셀라라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맏아들 엘은 다말과 결혼했는데 엘이 사악하므로 하나님께서 죽이셨습니다.(창38:7,대상2:3) 그러므로 둘째 아들인 오난을 형수에게 들어가게 해서 형의 씨를 있도록 했으나 오난이 씨를 주지 않자 오난도 죽이셨습니다. 이에 유다는 다말에게 셋째 아들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도록 했습니다. 셀라가 장성했으나 유다는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다말은 유다가 양털을 깎으려고  딤낫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과부 옷을 벗고 베일로 가리고 딤낫으로 가는 길 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유다는 길가에 앉아있는 며느리인 다말을 창녀로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자기 얼굴을 가렸으므로 유다가 그녀를 보고는 그녀를 창녀로 여기고(thought-생각하고) (창38:15)

  유다는 며느리인 다말을 창녀로 생각(thought)하고 다말에게 들어가 아이를 잉태하게 하였습니다. 유다의 생각도 역시 낙제점이었습니다.
  네 번 째 언급은 창세기 48장 11절에서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인 야곱의 생각(thought)이 언급됩니다.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thought)도 하지 못하였는데, 보라, 하나님께서 내게 네 씨도 보여 주셨도다, 하니라. (창48:11)

  야곱은 염소의 피에 적셔진 요셉의 채색 옷을 보고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하였고 다시 볼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하였으나 손자까지 보았습니다. 야곱의 생각(thought)도 예외 없이 틀렸습니다.
  다섯 번 째 언급은 창세기 50장 20절에서 요셉의 열 명의 형들의 생각(thought)이 언급됩니다.

  오직 당신들로 말하건대 당신들은 내게 악을 행하려고 생각(thought)하였으나 오히려 하나님은 그 일이 선이 되도록 계획하사 이 날과 같이 많은 사람을 살려 구원하게 하셨나니 (창50:20)

  열 명의 형들의 생각(thought) 역시 모두 악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thought)에 대한 평가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생각(thought)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생각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생각에 대해서는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의로운 자들의 생각들은 올바르나 사악한 자들의 계략들은 속임수이니라. (잠12:5)

  의로운 자들의 생각들은 올바릅니다. 잠언 12장 5절에서 말하는 “의로운 자들”은 믿는 자들입니다. “사악한 자들”은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성경에서 “의로운 자들”과 “사악한자들”의 차이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혹은 하나님의 명령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로 구분됩니다. 의로운 자들의 생각은 올바르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혹은 성경 기록을 믿었을 때 떠오르는 생각은 올바르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성경 기록을 믿지 않았을 때 떠오르는 생각은 사악한 자들의 계략이며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사55:8-9, 시33:10-11)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라. 주가 말하노라.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55:8-9)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은 하늘들이 땅보다 높은 것같이 다릅니다! 창세 이후로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이 같을 수도 없고 같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또 같을 수도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같다면 사람이 하나님과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생각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생각은 항상 계속해서 악할 것입니다!

    주께서 이교도들의 계획을 무산시키시며 백성들의 계략들을 무효로 만드시는도다. 주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분의 마음의 생각들은 모든 세대에 이르리로다. (시33:10-11)

  사람의 생각들이 아무리 완벽하고 좋아 보여도 하나님의 생각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악하다고 성경 기록이 말합니다.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며, 하나님의 생각들입니다. 성경 기록은 하나님과 동등한 권위를 갖고 있는 살아있는 책입니다!(히4:12)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와 같습니다. 성경 기록을 믿었을 때 떠오르는 생각들은 올바른 생각입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입니다.(롬3:3-4) 성경 기록이 내 생각과 다르다면 내 생각이 틀린 것입니다. 성경 기록이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성경 기록은 진리인 것을 인정하고 어린아이처럼 믿으면 그 때 떠오른 생각은 올바른 생각입니다. 올바른 하나님의 생각만 믿고 성령의 열매만 맺으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자유와 평안과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입니까?
  사람의 생각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따르시겠습니까?


9. 다스리는 것 (rule over)


  왕이나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회사의 사장이 되어서 높은 자리에 앉아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을 “다스리는 것(rule over)”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야고보와 요한 역시 다스림을 받기보다 다스리는 것을 바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영광중에 앉으실 때 자신들도 예수님의 오른편, 왼편에 앉아 다스리기를 원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무엇이 다스리는 것(rule over)인지 알려 주십니다.(막10:35-41)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방인들을 다스린다(rule over) 하는 자들이 그들에게 주인 된 권리를 행사하고 그들의 큰 자들이 그들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끼리는 그리하지 말지니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가장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할지니라.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하시니라. (막10:42-45)

  이방인들 사이에서 다스리는 것은 윗자리에 앉아서 주인 된 권리를 행사하는 큰 자가 되어서 권위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끼리는 그리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사이에서 다스리는 것은 이방인들처럼 다스리지 말지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너희끼리 다스리는 것은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가장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는 것이 너희끼리 “다스리는 것(rule over)”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다스리는 것(rule over)은 윗자리에 앉아 주인으로 아랫사람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다스리는 것(rule over)은 자신보다 낮은 사람들을 “섬기고 종이 되고 주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하시니라. (막10:45)

  예수님께서는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심”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셨고, 이 세상에서 다스리는 것(rule over)을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심으신 다스리는 것(rule over)을 저 하늘에서 거두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에게 주사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의 모든 무릎이 예수라는 이름에 굴복하게 하시고 또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9-11)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심”으로 사람들을 다스리셨습니다. 그 결과 “모든 무릎이 예수라는 이름에 굴복하는 다스리는 것(rule over)”을 거두셨습니다.(빌2:5-11) 이 세상에서 “다스리는 것(rule over)”을 심어야만, 영원한 저 하늘에서 “영원히 다스리는 것”을 거둡니다. (갈6:7) “영원히 다스리는 것”을 거두려면 이 세상에서 “섬기고 종이 되고 주는 것”을 심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권위를 행사하고 존경받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속은 것입니다.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또한 그것을 거두리라. 자기 육신에게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는 것을 거두되 성령에게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 (갈6:7-8)

  누가 말하는 다스리는 것(rule over)이 옳을까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다스리는 것과 성경 기록이 말하는 다스리는 것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든지 각자의 선택입니다.
  선택의 결과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10. 잘하는 것(well)


  요즘 사람들은 웰빙(well being)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웰빙(well being)은 오염되지 않은 천연 재료로 지은 건물에서 슬로우 푸드나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유기농 먹거리를 먹는 생활을 웰빙(well being)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웰빙(잘하는 것;well being)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우리가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오심을 알려 줄 때에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들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며 우리는 그분의 위엄을 눈으로 본 자들이니라. 뛰어난 영광으로부터 이러한 음성이 그분께 나서 이르기를,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실 때에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하늘로부터 나온 이 음성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들은 것이니라.
또한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more sure word of prophecy)이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whereunto ye do well that ye take heed)이니라. (벧후1:16-19)

  베드로후서 1장 16절부터 19절 말씀에 의하면 베드로와 제자들은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예수님의 모습이 해같이 빛나고 그분의 옷이 빛같이 희게 되어서 모세와 엘리야가 그분과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나는 음성도 들었습니다. 이 사건은 마17:1-6, 막9:1-8, 눅9:28-36에 기록된 사실들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지만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보다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이 있다’고 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보다‘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은 기록된 성경입니다! 바로 이 기록된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more sure word of prophecy)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 하는 것(웰빙;well being)"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통치자인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헛된 말(vain words)이라고 말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합니다. 마귀는 이 세상에 속한 많은 일에 바쁘고 수고하게 해서 성경 읽을 시간조차 주지 않습니다.(출5:9)

  그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일을 주고 그들이 그 일로 수고하게 하여 헛된 말(vain words)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할지니라, 하였더라. (출5:9)

  자신의 생각에 자신이 아무리 잘 하고 있다(웰빙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라도 하나님의 단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잘하는 것(well being)이 아닙니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every word)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마4:4, 눅4:4)

  이 세상에서 천연 재료로 건축한 집에서 오염되지 않은 무농약 무항생제 유기농 최고급 음식만 먹고 살아도 반드시 죽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단어(every word of God)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잘 하는 것(웰빙)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마음만 있다면 웰빙(well being)할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 성경을 읽으십시오!
  여러분 모두 웰빙(well being)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11. 행복 (happy)


  이 세상에서 행복이란 자신이 보기에 좋은 것을 받고,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고, 좋은 것을 즐기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보기에 좋은 것들을 즐기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의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면 행복한 자니 (벧전3: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비방을 받으면 행복한 자로다. (벧전4:14)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한 자에 동의하시나요?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일을 하고 베풀어 주었지만 오히려 비방을 받고 고난을 당하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올바른 일을 하고 베풀어 주었지만 오히려 비방을 받고 고난을 당하면 화가 나고 억울하고 원통한 일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로서는 누군가에게 올바르게 베풀고 섬겨주었는데 오히려 비방을 하고 욕을 하고 고소를 한다면 분명 억울하고 분하고 화가 날 일입니다.
  성경에 [의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면 행복한 자]라는 기록이 사실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쟁이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의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면 행복한 자라고 성경에 기록만 하지 않으셨고 항상 본보기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의 법정에서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려주고 먹을 것도 주고 병도 고쳐주고 마귀도 쫒아준 사람들로부터 배반당하셨고 고소당하셨습니다. 재판장인 빌라도까지 예수님께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다고 3차례나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형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장 스스로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죽이라고 내어 줄 수 있을까요?
  어찌 할 바를 모를 만큼 억울하고 원통해서 화가 나야 할 일이 아닐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억울하고 원통해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고소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고 행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너희(그리스도인들)가 의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면 행복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비방을 받으면 행복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진리이며 어린아이처럼 믿어야만 합니다.

  잘 대해 주었고 유익한 것을 베풀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방을 받고 고난을 당하셨나요?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힘들어 하는 사람을 도와주었는데 오히려 비난하고 욕을 하던가요?
  힘들어하고 어렵다고 해서 아낌없이 넉넉하게 주었는데 모함을 당하셨나요?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을 오르신 행복한 예수님을 기억하시나요?
  
  보라, 참는 자들을 우리가 행복한 자로 여기나니 (약5:11)

  그러나 죄인들에게는 의로 인하여 고난을 당하고 비방을 받을 때 참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올바른 일을 하고 베풀어 주었지만 오히려 비방을 받고 고난을 당할 때 참을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5:4)

  믿음(faith)이란 예수님께서 창시하고 완성하신 예수님의 소유입니다(히12:2). 믿음(faith)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순종할 때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선물입니다(엡2:8). 죄인인 우리 자신에게서는 어떤 선한 것도 나올 수 없습니다.(시39:5, 사64:6, 롬3:3-4, 고후3:5)

  우리는 어떤 일이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으로 생각할 만큼 능력이 있지 아니하며 오직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고후3:5)

  그러나 어떤 환경이나 처지도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지 못합니다.(빌4:11, 히13:5-6, 단3장) 믿음의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빌라도의 법정에서 억울한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셨습니다.(마27, 막15, 눅23, 요18-19장) 일곱 배나 더 뜨거운 용광로에 던져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행복했습니다.(단3장)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도 행복했습니다.(단6장) 예수님과 복음으로 인해 감옥에 갇힌 바울도 행복했습니다.(빌1:13-18, 2:17-18) 모두 믿음(faith)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네게 믿음(faith)이 있느냐?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너 자신을 위해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허용하는 그것으로 인해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행복하도다. (롬14:22)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faith)만 있다면 어떤 환경이나 어떤 처지에서도 평온을 유지하며 어떤 해도 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올바른 일로 인해 고난을 당할지라도 평온을 유지하십니까?
  자신을 비방하고 헐뜯는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까?
  행복하십니까?

  자기 이웃을 멸시하는 자는 죄를 짓되 가난한 자에게 긍휼을 베푸는 자는 행복하니라. (잠14:21)

12. 영적 성장(spiritual grow up)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새로 태어난 아기들입니다. 아기들은 순수한 말씀의 순수한 젖으로 자라야 합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벧전2:2)

  아기들(babes)이 자라면 어린 아이(little children)가 되고 어린 아이가 더 자라면 아이(children)가 되고 아이가 자라면 젊은 청년(young men)이 되고 청년이 더 자라면 아버지(father)가 되어 가정을 이룹니다. 아버지가 나이가 들면 장로(elder)가 되어 가르치고 조언해 줄 수 있고 장로가 더 나이가 들면 나이 많은 자(the aged)가 되어 많은 경륜과 경험을 통해 모든 일에 능숙한 조언자가 됩니다. 이런 영적인 성장 과정은 겸손하게 되는 과정이며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과정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장(grow up)은 말단 하위직에서 높은 고위직에 오르는 것입니다. 즉 아래에서 위를 향해 더 자라고 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성장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더 낮아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지옥까지 낮추어지신 삶이었습니다. 이것은 영적 성장이 무엇인지 본보기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들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빌2:6-8)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셨고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들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자신을 겸손하게 하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시므로 영적 성장의 본보기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영적 성장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 줍니다. 바울이 회심한 후 AD55년에 쓴 고린도전서에서는 자신을‘나는 사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고전15:9)’라고 합니다. 작은 자이지만 아직은 사도입니다. AD63년에 쓴 에베소서에서는 ‘모든 성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엡3:8)’라고 합니다. 그래도 아직은 성도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AD68년에 쓴 디모데전서에서는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딤전1:15)’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영적으로 성장할수록 자신에 대해서 더 겸손해 지고 더 낮아져서 ‘죄인들 중에 내가 우두머리’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삶을 통해 영적 성장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죄인들 중에 우두머리라면 당연히 십자가에 못 박혀야 죽어야 할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장(grow up)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추앙을 받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영적 성장(spiritual grow up)은 자신이 무가치하고 무익하고 무능력한 존재인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장은 위로 오르는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영적 성장은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자신이 무가치하고 무익한 존재인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시39:5, 사64:6, 롬3:4)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일에서 그분 안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그분은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엡4:15)

오직 은혜 안에서 자라고 우리 [주] 곧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서 자라라. 그분께 영광이 이제와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벧후3:18)

  그리스도인이라면 영적으로 자라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서 성장(grow up)이란 위로 오르는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영적 성장(spiritual grow up)은 무가치하고 무익하고 무능력한 존재인 것을 마음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더 낮아지고 더 겸손해져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적 성장은 어느 수준입니까?
  아직도 자신은 쓸모 있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3. 참된 경배(true worship)와 모이는 것.


  대부분 교회들의 경배시간은 일요일 오전 11시로 정해져 있습니다. 깨끗한 옷을 차려입고 헌금을 준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경배드리기 위해 예배당에 갑니다. 주보에 준비된 경배 순서에 따라 성경 봉독과 기도를 하고 성가대 찬양도 하고 설교를 듣고 헌금을 하고 축도를 받고 경배를 마칩니다. 이것이 참된 경배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경배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now is)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 하시니라.(요4:23-24)

  예수님께서는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경배할 때는 곧 지금(now is)이라고 말씀하셨고 경배 장소는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구약 시대에 경배는 성전에서 드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 건물이 있었고 성전에 희생물과 헌물을 가져가야 했고 예수님께서도 성전을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56:7, 마21:13, 막11:17, 눅19:46)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AD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경배할 장소인 성전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요한복음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20년이 지난 후에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4:23-24에서 말씀하신 참된 경배는 건물인 성전이 사라진 뒤에 경배할 것에 대해서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경배(worship)란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낮추어 엎드리거나 또는 무엇인가를 드리는 것입니다.(창22:5, 24:26,48)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막이나 성전에서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언제 어디서나 경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성전은 파괴되어 사라졌고 지금 하나님의 성전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몸이기 때문입니다.(고전3:16 6:19)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고전3:16)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참된 경배를 할 수 있습니다. 참된 경배에는 때와 장소와 형식과 순서가 없습니다. 오직 영안에서와 진리 안에서(in spirit and in truth) 지금(now is) 경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안에서와 진리 안에서 지금 경배하는 참된 경배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참된 경배가 모이는 장소와 형식과 순서가 없다고 모이지 말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경배는 언제 어디서든지 경배할 수 있지만 모이는 것은 더욱 더 필요합니다.(히10:25)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되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10:25)

  모이는 것은 필요하고 더욱 더 자주 모여야 합니다. 그러나 모이는 것은 경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경배는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지금 경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9장과 10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 한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히9:28,10:10,14)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단 한 번 드려지셨으며 또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리라.(히9:28)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 (히10:10)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 헌물을 드림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 (히10:14)

  완전하게 된 구원받은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습니다.(히10:19-2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 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었는데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니라. (히10:19-20)

  거룩히 구별되어 완전하게 된 성도들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있는 길(요14:6)로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지성소에 담대하게 들어가서 언제든지 경배할 수 있습니다.(히10:19-20) 그뿐만 아니라 대제사장께서 우리에게 계십니다. (히10:21)

   또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께서 우리에게 계시므로 우리 마음이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고 우리 몸은 순수한 물로 씻겼으니 우리가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히10:21-22)
  
  히브리서 10장 23-25절에서는 [우리 마음이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고 우리 몸은 순수한 물로 씻겼으므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경배할 수 있다]는 [믿음의 고백을 흔들림 없이 굳게 잡고 더욱 더 모이기에 힘쓰라]고 말합니다.(히10:23-25)

   (약속하신 분께서 신실하시니)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흔들림 없이 굳게 잡고 서로를 살펴보아 사랑과 선한 행위에 이르도록 격려하며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되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3-25)

  모이는 목적과 이유는 [서로를 살펴보아 사랑과 선한 행위에 이르도록 격려하며, 서로 권면하기 위한 것]입니다. 함께 모이는 일은 경배하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물론 항상 지금 경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였을 때에도 경배는 이어집니다. 그러나 모이는 목적과 이유는 히브리서 10장 23-25절에서 분명하게 [서로를 살펴보아 사랑과 선한 행위에 이르도록 격려하며, 서로 권면하기 위한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모이는 것은 어떤 형식과 순서에 따라 예배를 드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지금(now is!) 경배하십니까?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옴을 볼수록 더욱 더 자주 모이십니까?
  서로 살펴보고 서로 격려하며 서로 권면하는 일에 더욱 더 힘을 쓰십니까?
14. 승리(victory)하라!


   사람들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또는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할 때 파이팅(fighting - 전투, 싸움, 투쟁)을 외칩니다. 이 세상의 삶은 전쟁터입니다. 전쟁에서 패하면 죽거나 포로가 됩니다. 전쟁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오직 승리(victory)뿐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전쟁에서 승리(victory)하여야만 합니다.
   승리(victory)란 적을 제압하여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말할 수 없는 성경 기록에 의하면 이 승리(victory)란 것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대상29:11)

    오 {주}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victory)와 위엄이 주의 것이오니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주의 것이니이다. 오 {주}여, 왕국도 주의 것이오니 주께서는 모든 것 위에 머리로서 높여지셨나이다. (대상29:11)

  또 승리(victory)란 오직 주님을 위해 주님께서 승리를 하십니다.(시98:1)

   오 새 노래로 {주}께 노래하라. 그분께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고 그분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이 그분을 위해 승리를 얻었도다. (시98:1)

또 승리(victory)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십니다.(고전15:57)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5:57)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승리하게 하십니다.(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 모든 곳에서 그분을 아는 냄새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감사하노라. (고후2:14)

또 세상을 이기는 승리(victory)란 오직 우리의 믿음(faith)뿐입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은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5:4)

믿음(faith)이란 예수님께서 창시하신 것이며 완성하신 것입니다.(히12:2)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히12:2a)

  예수님께서 창시하시고 완성하신 믿음(faith)만 있다면 이 세상의 어떤 전쟁에서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소유와 같은 이 믿음(faith)은 누구든지 말씀 하나님(the Word)이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들(the words)을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엡2:8)

너희가 믿음(faith)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엡2:8)

   공평하신 말씀 하나님(the Word)께서는 자신의 말씀(the words)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faith)을 선물로 주십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faith)이 있으면 오직 하나님께만 있고 오직 하나님만을 위한 승리(victory)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적과도 같은 승리(victory)를 보여주는 예가 사무엘하23장 8-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소유한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자리에 앉았던 다그몬 사람 곧 에센 사람 아디노는 대장들 가운데 우두머리더라. 그가 자기 창을 들어 팔백 명을 치고 한 번에 그들을 죽였더라.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인데 그는 다윗과 함께한 세 용사 중의 하나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함께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섰으나 그때에 그들이 저들에게 도전하였고 그가 일어나서 손이 피곤하여 칼에 달라붙을 때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더라. 그 날에 {주}께서 큰 승리를 이루셨으므로 백성이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떼를 지어 팥이 무성한 땅에 함께 모이매 백성이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도망하였으나 그는 그 땅 한가운데 서서 그 땅을 보호하고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더라. {주}께서 큰 승리를 이루셨더라. (삼하23:8-12)

사무엘하23장 8-12절에서 언급되는 아디노와 엘르아살과 삼마를 살펴보시면 이 사람들은 다윗이 소유한 용사들(whom David had)이라고 합니다. 아디노와 엘르아살과 삼마는 자신이 자신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소유였습니다.

  다윗이 소유한 용사들(whom David had)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자리에 앉았던 다그몬 사람 곧 에센 사람 아디노는 대장들 가운데 우두머리더라. 그가 자기 창을 들어 팔백 명을 치고 한 번에 그들을 죽였더라. (삼하23:8)

이중 첫 번째 사람인 아디노는 [그가 자기 창을 들어 팔백 명을 치고 한 번에 그들을 죽였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팔백 명을 한 번에 죽였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삼하23:8)
  그 다음은 엘르아살인데 엘르아살 역시 기적적인 전투를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쳐 들어오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도망했고 엘리아살 홀로 일어나서 손이 칼에 달라붙을 때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습니다. (삼하23:9-10)

    그 다음은 아호아 사람 도도의 아들 엘르아살인데 그는 다윗과 함께한 세 용사 중의 하나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싸우려고 함께 모이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러섰으나 그때에 그들이 저들에게 도전하였고 그가 일어나서 손이 피곤하여 칼에 달라붙을 때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더라.(삼하23:9-10a)

  엘르아살이 싸운 전투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전투입니다. 그러나 성경 기록은 과장이 아닌 절대 사실입니다. 이 날의 승리는 아디노와 엘르아살이 싸워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주께서 큰 승리를 이루신 것입니다.(삼하23:10)

그 날에 {주}께서 큰 승리(a great victory)를 이루셨으므로 백성이 돌아와 그의 뒤를 따라가며 노략할 뿐이었더라. (삼하23:10b)

  아디노와 엘르아살은 주님의 전쟁 도구였을 뿐 전쟁의 주역은 주님 자신이셨습니다.(출14:14, 삼상17:47, 대하20:15) 사무엘하23장 11-12절에서 모든 전쟁은 주께 속했고 주께서 싸우시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확실히 입증해줍니다.(삼하23:11-12)

그 다음은 하랄 사람 아게의 아들 삼마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떼를 지어 팥이 무성한 땅에 함께 모이매 백성이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도망하였으나 그는 그 땅 한가운데 서서 그 땅을 보호하고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더라. {주}께서 큰 승리를 이루셨더라. (삼하23:11-12)

  삼마는 아디노와 엘르아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아디노는 팔백 명을 한 번에 죽였고 엘르아살은 블레셋 사람들을 피해 도망한 이스라엘 사람들 대신 홀로 일어나서 손이 칼에 달라붙을 때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습니다.
  그러나 삼마는 도망한 이스라엘 사람들 대신 홀로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는데 팥이 무성한 밭까지 보호하면서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어찌 이런 기적 같은 승리가 삼마의 능력이겠습니까?

   {주}께서 큰 승리를 이루셨더라. (삼하23:12)

  아디노와 엘르아살과 삼마는 하나님의 예표인 다윗의 소유였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고전6:19-20)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아디노와 엘르아살과 삼마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표인 다윗의 소유였습니다. 아디노와 엘르아살과 삼마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전쟁은 주께 속한 것(출14:14, 삼상17:47, 대하20:15)이며 주께서 싸우시기 때문입니다.(출14:14) 아디노와 엘르아살과 삼마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기적과 같은 승리를 이루셨다면 여러분과 저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기적과 같은 승리를 이루실 것은 확실합니다!
  아디노와 엘르아살과 삼마를 도구로 사용하신 기적적인 승리와 전혀 다른 슬프고 비참한 승리(victory)도 있습니다. 바로 사무엘하 19장 2절에서 언급되는 요압의 승리입니다.

왕이 자기 아들로 인하여 근심한다 함을 그 날에 백성이 들었으므로 그 날의 승리(victory)가 온 백성에게 애곡하는 일이 되었더라. (삼하19:2)

  사무엘하 19장 2절에서 언급된 승리(victory)는 온 백성에게 애곡하는 일이 된 승리(victory)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승리를 했지만 기쁜 승리가 되지 못하고 애곡하는 승리가 되었을까요?
  사무엘하 19장의 승리는 요압이 반역자 압살롬을 죽이고 얻은 승리입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킵니다.(삼하15-18장) 다윗은 아렉 사람의 후새의 조언 덕분에 아들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요단강을 건너 마하나임으로 급하게 피신을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군대의 삼분의 일씩 맡겨서 압살롬의 반역을 정벌하도록 전열을 정비합니다. 그리고 아들인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고 명령합니다.(삼하18:5)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를 위해 청년 곧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 하매 왕이 압살롬에 관하여 모든 대장에게 명을 내릴 때에 온 백성이 들으니라. (삼하18:5)

  압살롬의 군대와 에브라임 숲 전투에서 압살롬의 군대 이만명이 죽었고 압살롬은 큰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려 매달려 있게 되었습니다.(삼하18:7-9)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매달린 것을 본 사람이 요압에게 알립니다. 그러자 요압은 왜 압살롬을 쳐서 죽이지 않았느냐고 힐책하고 죽였다면 은 십세겔과 띠 하나를 주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요압에게 은 천세겔을 받는다 할지라도 왕의 아들을 치지 않겠다고 합니다. 만약에 자신이 압살롬을 쳐 죽였다면 당신이 자신을 죽였을 것이라고 합니다.(삼하18:11-13)

  그 사람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 손에 은 천 세겔을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내 손을 내밀어 왕의 아들을 치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듣는 데서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말씀하시기를, 조심하여 아무도 청년 압살롬에게 손을 대지 말라, 하셨나이다. 그렇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내 생명을 대적하여 그릇된 일을 행하였어야만 하리니 왕에게는 아무 일도 숨길 수 없으며 또 당신이 친히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하니라.(삼하18:12-13)

  그러나 요압은 작은 창 세 개를 가지고 가서 아직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살아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찔러 죽입니다.(왕상18:14-15) 요압은 적장인 반역자 압살롬을 직접 죽였고 승리를 얻었지만 이날의 승리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얻은 승리였습니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얻은 요압의 승리의 결과는 왕이 슬피 울며 애곡하고 온 백성들도 애곡하는 일이 되었습니다.(삼하18:33, 19:1-2) 이것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얻은 승리는 하나님께서도 슬퍼하시고 성도들에게도 슬픔이 됩니다.
  요압은 자신의 손으로 적을 제거하고 승리를 했지만 왕도, 백성들도 애곡하고 요압 자신도 기뻐하지 못합니다. 아디노와 엘르아살과 삼마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도구에 불과했지만 기적적인 승리를 했습니다.  백성들은 안전하게 돌아와서 전리품만 거둡니다. 왕과 백성들 모두 즐겁고 기쁜 승리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믿는 사람들의 삶은 기적적인 승리의 연속입니다.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어린 아이처럼 믿었다면 여러분의 삶에 반드시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께서 일하신 기적적인 승리를 경험하지 않으시렵니까?
    주께서 행하신 이적들을 기억하고 묵상하고 이야기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으시렵니까?

   내가 {주}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리니 참으로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이적들을 기억하리이다. 내가 또한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고 주께서 행하신 일을 이야기하리이다.(시77:11-12)

마치면서

  킹제임스성경은 실제 삶에 적용해야 하는 실제적인 인생안내서이며, 사용설명서입니다. 또 킹제임스성경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낱말 사전이기도 합니다.
  이 악한 현 세상은 마귀가 통치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통치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배워서 사용하는 단어(word), 낱말의 정의가 킹제임스성경이 정의하는 단어, 낱말의 의미와 반대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을 선택한 성도들이라면 킹제임스성경 스스로 정의하는 단어(word)의 의미대로 믿고 사용해야 합니다.
  이번 소책자에서 킹제임스성경이 말하는 단어(word)의 의미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단어(word)의 의미의 차이에 대해서 확인하고 깨달아서 더 이상 속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책자에서 다루지 못한 단어들은 킹제임스성경에서 찾아 스스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어떤 단어 사전보다도 정확한 단어 사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마지막이 가깝습니다.
  20여년전 로마 카톨릭교회와 제수이트, 일루미나티와 세계 정부에 대해서 자료를 수집할 때 만해도 세상 모든 사람들을 노예로 전락시켜 지배하려는 세계정부 음모는 먼 훗날 일어날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글로벌화, 세계화란 미명하에 하나의 세계, 하나의 경제, 하나의 정부로 통합되어 가는 것은 현실입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마지막 정점을 향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세계정부는 현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쁜 소식입니다. 머잖아 주께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우리가 그분께로 함께 모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영으로나 말로나 혹은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말라. (살후2:1-2)

  마지막이 가까이 이르렀다고 해서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을 알았다면 남은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서 더 즐기려 하고 더 편하게 살려 하는 것은 마귀에게 철저히 속는 것입니다.
  주어진 시간동안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도록 해야 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바른 진리를 알도록 서로 세워주고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어떤 교리를 서로 다르게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적이 아닙니다. 한 몸의 지체들입니다. 누군가 자신과 다르게 믿는 것이 있다면 오직 성경으로 바로 잡고 세워주려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결코 잊지 말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아무 일(Work)도 할 수 없는 시체처럼 무능력하고 무익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를 신뢰하고 믿는 것만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경배할 수 있습니다. 말씀 하나님(the Word)과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신뢰하고 믿기만 하면 믿은 하나님의 말씀(the word) 그대로 성령님께서 현실로 만드시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믿은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기적 같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풍성한 보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이 세상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체험하며 자유롭게 살 수 있습니다.
자유롭고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만 주님 오실 때 신실한 청지기로 드러나게 되고 주님께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지 않는다면 내 생각은 항상 악하다는 것!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내가 할 것 오직 하나! 주님 오실 그 날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을 마음으로 믿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묵상하고 이야기하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난외주 1 }}}

살아있는 교회(마16:18, 엡5:22-32, 고전1:2)
   1) 살아있는 건물(마16:18, 벧전2:4-8, 엡2:20-22, 계21:1-27)(*새예루살렘)
   2) 살아있는 한 몸(엡5:22-32, 고후11:2, 계21:2,9. 고전12장, 롬12:4-8. 엡1:22-23, 골1:18)(*남편과 아내)
   3) 살아있는 성도들의 모임(마18:20, 고전1:2, 고후1:1, 롬16:5, 고전16:19, 몬1:2, 골4:15)(*성도들의 모임)

◈ 교회를 우주적인 교회와 지역 교회로 말한다면!
   ※우주적인 교회는 살아있는 머리와 한 몸으로 건축된 살아있는 건물 새 예루살렘이다.
      *예수님께서는 새예루살렘의 가장 높은 곳의 중심이며 머리 모퉁이돌이시다.
      *예수님의 아내이며 몸인 교회는 새예루살렘의 모퉁이돌을 제외한 지체들로서 새예루살렘의 건축 재료들이다. 새예루살렘은 살아있는 실제적인 건축물이다.
   ※지역 교회는 살아있는 성도들의 모임인 한 몸이다. 예수님께서 머리이시며, 성도들은 그분의 몸의 지체들이다. 그러므로 살아계신 예수님의 몸인 지역 교회는 머리이신 살아 계신 예수님께서 살아있는 몸의 지체들에게 명령하시고 운영하시는 살아있는 유기체인 예수님의 교회이다.


{{{난외주 2 }}}

◈◈◈ word, 말씀인가? 단어인가?

“word”는“단어, 용어, 어휘, 낱말”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원본이나 의미를 보존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단어(word)를 보존하십니다.(시12:6-7) 오직 성경 번역에서만 “word”를 “말씀”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말씀]이라고 번역하면 말하는 것의 높임말이라고 여깁니다. word를 말씀으로 번역함으로 인해서 “word”의 의미인 “단어, 용어, 어휘, 낱말”이라는 의미가 감추어집니다. 또 word가 아닌 say, says, saying, sayings, sayest, said, saith, saidst, speak, speakest, speaketh, speaking, spake, spoken, tell, talked, told, oracles, communing과 같은 단어들이 word와 동일하게 [말씀]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글로 ‘말씀’이 나오면 word(단어)인지 saying, said, told, speaking(말하는 것)인지 전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단어(word)와 말하는 것(saying, said, told, speaking)은 구별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대언자들을 통해 자신의 단어(word)을 말(saying, speaking)하도록 하실 때 대언자의 입에 자신의 단어(thy word)를 넣어주시고(출4:15,28, 30.신33:3,9) 대언자는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를 말(saying, speak)하는 것입니다. 한글 성경에서 단어(word)와 말하는 것(said, told, speaking)을 구별할 수 없도록 번역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특히 성경 기록을 칭하는 ‘the word of God’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번역하면 하나님이 말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국 의미전달에 문제가 없다면 단어(word)를 바꾸어도 문제가 되지 않게 됩니다.
  또 말씀으로 번역한 결과 예수님께서 단어 하나님(the Word)이시며, 그 분의 단어들(words)이 성경 기록이라는 진리도 감추어집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한글 성경에서는 심각한 오류를 드러냅니다. 한 예로 예수님의 이름인 The Word of God와 성경 기록을 칭하는 the word of God은 대문자와 소문자만 다를 뿐 철자와 음가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영어성경에서는 같은 두 단어가 같다는 것을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영어로 예수님이신 the Word 와 성경기록 단어인 the word도 같은 것이라고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글 번역 성경에서는 같은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the word of God"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번역하고 사용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단어(the word of God)”라고 번역하면 이상한 느낌이 들고 거부감을 갖게 됩니다. 너무 오래 동안 잘못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word”를 정확하게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은 “word”의 진짜 의미인 단어, 용어, 어휘, 낱말”을 전달하지 못하는 심각한 약점이 있습니다.
  성경 기록이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고 예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라고 하면 즉시 성경 기록과 예수님이 동일하다는 사실을 인식합니다. 또 성경 기록에 한 단어, 한 단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고 그분의 단어(word)에서 한 단어(a word)를 더 하거나 빼거나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쉽게 인식합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word의 바른 의미를 찾기를 바랍니다.

  [모세 오경 번역의 예]
창세기 (말씀 29번 중 word는 5회)
word - 창15:1,4, 44:7,18,24, 5회

***word가 아닌 말씀 24회
said - 창3:1, 17:23, 21:1, 31:16, 47:30.
saidst - 창32:9,
saying - 창50:16,
communing - 창18:33,
speak -창24:33, 27:6,
spoken -창12:4, 21:2, 24:51,
spake 창8:15, 9:8, 16:13, 24:7, 31:11,29, 35:15, 46:2,
told  창22:3,
talked - 창35:13,14,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런 말씀(words)을 (말)하시나이까(saith)? (창44:7)
오 내 주여, 원하건대 주의 종이 내 주의 귀에 한 말씀(a word)을 고하게(speak) 하소서. (창44:18)

출애굽기(말씀 57번 중  word는 11번)
word 11회
출4:28,30, 9:20,21, 19:7, 20:1, 24:3,4,8, 34:28, 35:1,

***word가 아닌 말씀 46회
said - 출6:26, 7:13,22, 8:15,19, 13:17, 16:23, 24:7, 33:5,12,
saith - 출5:10, 7:17, 32:27,
saidst - 출32:13,
says - 출11:4,
saying - 출19:23, 20:1, 35:4,
speak -출34:35,
spoken -출4:10, 9:12,35, 10:29, 19:8, 34:32,
spake - 출6:2,10,13,28,29, 7:8, 12:1, 13;1, 14:1, 16:11, 20:19(2), 25:1, 30:11,17, 22, 31:1, 12, 33:11, 40:1,
talked - 출33:9,

레위기 (말씀  36회 중 word는 한번도‘없음’)
*** word는 없으나 말씀으로 모두 번역됨.
spake - 레1:1, 4:1, 5:14, 6:1,8,19,24, 7:22,28, 8:1, 10:3,8, 11:1, 12:1, 13:1, 14:1, 33, 15:1, 16:1, 17:1, 18:1, 19:1, 20:1, 21:16, 22:1,17,26, 23:1, 9,23,26,33, 24:1,13, 25:1, 27:1,

민수기 (말씀 77회 중 word는 9회)
9회 word - 민4:45, 11:24, 15:31, 22:18,38, 23:5,16, 24:4,16,

***word가 아닌 말씀 68회
said - 민11:21, 16:40,    
saith - 민22:16, 24:13, 32:27,
say - 민11:12, 22:19,
speak - 민7:89, 22:8,
speaking - 민7:89,
speaketh - 민23:26,
spoken - 민10:29, 12:2(2) 14:17, 23:17,19,
spake - 민1:1, 48, 2:1, 3:1,5,11,14,44, 4:1,17,21, 5;1, 5,11, 6:1, 22, 7:4, 8:1,5,23, 9:1,9, 10:1, 11:25, 13:1, 14:26, 15:1,17,37, 16:20,23,36, 16:44, 17:1, 18:25, 19:1, 20:7,23, 25:10,16, 26:1,52, 27:6, 28:1, 31:1,25, 33:50, 34:1,16, 35:1,9,

신명기  (말씀 58회 중  word는 29회)
word (29) - 신1:1, 4:36, 5:5,22, 6:6, 8:3, 9:5,10, 18:21, 27:3,8,26, 28:58, 29:1,9,29, 30:14, 31:1,12,24,28,30, 32:44,45,46, 33:3,9, 34:5

***word가 아닌 말씀 29회
said - 신1:21, 4:10, 9:3,25, 11:25, 17:16, 18:2, 29:13, 31:2,3,        
say - 신32:37,
saying - 신9:23,
speak -신5:27,  
speaking - 신4:33, 5:26,  
spoken - 신1:14, 6:19, 18:22, 26:19,
spake - 신1:6, 2:2,17, 4:12,15, 5:22, 9:13, 32:48,  
talked – 신5:4,24,

  * [참고] 흠정역 성경 번역자는 “word”가 “단어, 용어, 어휘, 낱말”이라는 의미에는 100% 동의하지만 우리말의 한계라고 답변하였습니다.

[☞ {{{난외주 3 }}}

[침례] ✔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셋째 날에 다시 부활하셨다는 복음을 믿은 사람들은 복음을 마음으로 믿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되어 한 몸이 되었기에 2000년 전 십자가의 대속은 과거의 대속 사건이 아니라 현재 그리스도인에게 대속이 됩니다. 시간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2000년 전 사건은 과거입니다. 그러나 침례에 의해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기에 과거의 사건이 하나님이신 예수님 안에서는 현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는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물속에 잠기는 것만 침례는 아닙니다. 침례란 무엇이 무엇 안에 잠기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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