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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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제목 : 구원의 컷트라인... 1,146 - 조회
- 작성자이름 : 누룩경계인  2004/08/30 - 등록

목사님 주님안에서 평안하신지요?

제가 궁금한게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킹제임스성경을 가지고 개설된 많은 사이트들을 돌아 다니다가 보니까, 구원에 대해 여러가지 견해들이 나뉘어서 혼란 스럽네요.

같은 성경을 가지고 왜 이렇듯 많은 설들이 난무하는지....

예전에 목사님께서 구원에 대해 설명해 주셨고 저도 이제 껏 알고 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킹제임스 사이트에서 구원을 잃어 버릴수도 있다는 글들이 많이 있어서, 어떤게 정말로 진실인지 알수 가 없네요.

다음은 그 글들 중 하나입니다.

당신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습니까?
중생의 이해와 사람의 구조인 삼분설로 이해한 구원



중생이란 무엇인가?



중생은 예수께서 말씀한 내용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을 말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물]은 [세례]를 의미한다. 그리고 고린도전서와 로마서에서 보여주는 것은 이 세례가 바로 [장사]됨을 상징하고 있다. 물로 세례를 주는 그 자체가 우리를 장사지내게 하는 것이 아닌 상징적인 의식이 물세례라는 것이다.



이러한 [물세례]가 주는 것은 영적으로 우리의 육체가 [장사]된다는 의미이다. 물론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다는 의미이다.(홍해의 사건) 그리고 이러한 물세례의 의미를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고 죽는 사건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영적이며 신비적인 연합인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중생으로 말미암아 구원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중생을 경험하고 구원에 들어온 것이 확실하다.



그러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에서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즉 [물]이 의미하는 것은 그리스도로 [옛사람]이 죽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장사되어 죽은 자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이 [새 생명]으로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러한 생명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로써 영적인 연합이 성령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중생은 [성령세례]를 의미한다.
과거의 [물세례]가 죄를 사할 수 없지만 이러한 [성령세례]는 우리를 원죄에서 해방하고 자범죄를 용서한 사건이다. 원죄의 해방과 자범죄가 해결되는 죄사함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자신이 약속한 성령이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의 죄를 사해준다는 것을 설명하고 성령을 보내신 것이다. 이러한 성령은 중생을 일으키고 그 사람 안에 거하여서 그의 구원을 돕는다. 구원의 보증이 되고 구원 얻은 자와 함께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믿고 세례를 받은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은 성령으로 시작된 중생을 의미한다. 이렇게 중생되면 모든 구원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중생은 새로운 출발이며 시작일 뿐이다. 이러한 중생으로 시작된 생명은 성화의 과정이 있으며 이는 거룩함을 이루는 삶을 의미한다. 즉 영적인 훈련과 그리고 전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거듭남이라는 구원의 시작이 완전한가? 보수주의에서는 중생이 되었다는 완전한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중생으로 우리는 의인이 되었고 옛사람이 새사람과 새 생명을 얻었으며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 이는 구원을 얻은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구원을 지키는 개인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구원을 얻어서 중생된 자들은 구원에서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시작된 구원(중생)에서 그 후에 믿음을 지켜야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즉 중생 후 성화의 과정에서 그가 옛사람의 구습을 벗어나서 성화로 나타나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화의 과정에서도 그가 여전히 옛사람의 풍습을 쫒아서 살거나 또는 믿음으로 성령을 쫒아서 살지 않고 육신을 쫒아 산다면 그는 바울의 주장대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자를 우리는 흔히 발견한다. 그가 중생을 안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중생한 이후에 믿음을 져버렸기 때문이다.



물세례가 보여주는 것은 거의 보편성을 가진다. 세례요한이 보여준 것도 그렇다.
그리고 초대교회에서도 물세례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물세례와 같이 예수의 죽음을 믿고 출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의 불세례(성령선물)는 일반적으로 주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구원의 시작이며 구원으로 들어온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징적인 물세례가 의미하는 것은 앞서 말한 대로 그리스도로 옛 세상과 옛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와 새사람으로 분리된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이러한 중생의 사건은 물세례가 아닌 불세례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모든 자들에게 성령이 일반적으로 또는 보편적으로 거한다는 것은 구원의 시작이 사람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얻어진다는 것을 충족시킨다.



그리고 구원을 얻은 자가 구원을 끝까지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도 성령이 도우신다.
즉 구원을 중생으로 얻은 자가 구원을 좀더 크게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행위로 구원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 중생으로 이미 얻은 구원(의)을 지키고 믿음으로 구원 안에 머무는 성도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은 유효하며 그들은 같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다. 성령으로 시작된 구원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거듭난 생명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중생된 그들이 거룩함을 버리고 옛 구습을 쫓아 타락한 삶을 살아도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은 오해이다.



이는 그의 연약한 신앙으로 중생이라는 의인됨의 은혜가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렇게 중생이 된 자가 거룩함에 이르는 것을 포기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 타락하여 산다면 그는 중생되었지만 하나님께 인정되지 못하고 버림을 받아 결국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생이 하나님의 역사이기에 대충 믿어도 구원이 보장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성경도 그렇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구원에서 떨어질까 조심하라! 는 말씀과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 그리고 믿음을 끝까지 지키라는 것 등은 개인의 구원은 개인의 믿음으로 책임을 져야 된다는 것이다.



중생은 옛것과 새것으로 나뉘는 전환이라면 중생된 자가 성화의 과정에서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세상에서 육신을 쫒아 산다면 그는 망할 것이다. 이는 중생이라는 은혜를 믿음으로 얻어서 그 은혜 안에 들어왔지만 만약에 그 은혜를 져 버리고(스스로 믿음을 져버리고) 타락하여 산다면 그는 하나님의 구원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생도 믿음으로 얻었듯이 자신의 구원을 스스로 이루고 지키는 것도 믿음으로 이루어야 된다는 것이다.



구원이라는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지만 그 은혜를 얻고 지키는 것은 개인의 믿음이라는 것이다. 개인이 개인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얻고 또 지켜야 된다는 것이다.
물론 물세례는 누구나 주어지는 의식이지만 불세례는 받듯이 믿음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세례는 거의 보편적이지만 또한 불세례를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거나 늦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믿음으로 거듭남이 이루어지고 성령을 선물로 얻기 때문이다.



카돌릭과 같은 이단에서는 이러한 거듭남이 이루어질 수 없다. 즉 성령의 보증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개신교 안에서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개신교에서 말씀을 통해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을 현저히 약화 시키는 외적인 요소도 구원에 작용한다.



반면에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고 그 안에서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지도자들의 열정과 노력에 의해 그 교회에서는 이러한 중생의 경험이 대부분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통한 역사는 교회에 성직을 세운 것과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가장 큰 일은 구원을 전하고 들어온 자들을 믿음으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는 영적인 일이 우선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풍성하게 하고 은혜가 넘치도록 하는 영적인 교회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형식화된 교회와 의식과 조직과 설교는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들어온 자들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많은 중생으로 인도하는 교회가 되는 것은 교회가 말씀과 성령으로 살 때에 교회의 생명력이 나타난다. 중생이라는 거듭남은 믿음으로 누구나 얻지만 또한 믿음으로 지키는 것도 중요하며 또한 개인마다 충성도에 따라서 상급이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타락으로 나가지 않는 한 믿는 자들에게는 상급이 크고 적음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중생이 성령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뜻을 쫒아서 사는 것이 아닌 성령의 뜻을 쫒아서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된 자가 성화의 삶을 살아야 되며 그 결국은 영화(영혼이 낙원에 거함)에 이른다. 성령으로(중생으로) 시작되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것은 불행이다.



중생을 완전한 것으로만 설명하면 그 이후 하나님이 책임지는 성화로 구원을 얻는다는 자동구원 사상이 나타난다.
중생은 중생으로 시작이라는 구원을 얻은 출발을 의미한다. 보수주의에서 중생을 하나님이 해주었으니 영화에까지 이끌고 간다는 사상은 예정에 의한 선택사상에서 나타난다.

<이상 옮긴글이었습니다.>

온몸을 씻은 자들도 돼지처럼 다시 더러운 곳에 누웠다(벧후2:22)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계속 성화된 성도의 삶을 살지 않으면 구원에서 버림받는 다는 말도 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어떻게 바라봐야 되는 건가요?

제가 알기에는 한번 구원 받은 성도들은 지옥에 가지 않고  백보좌 심판석에서 행위대로 심판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또 한 가지, 알곡과 쭉정이 비유에서 쭉정이는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 성도들도 포함되는 건가요?

목사님 요즘 책을 집필하시느라 바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늦어도 좋으니 시간나실 때 답변 부탁드립니다.

매번 이런 글을 올려 죄송합니다. 다른 지체 분들도 여기에 대해 명쾌하게 알고 계신분이 계시면, 글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님안에서 늘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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